몸의 반란

몸의 반란, 손목 통증
"이 글은 그 비명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나의 첫 번째 기록이자, 창작의 열정이 불러온 몸의 비극에 대한 고해성사이다."

최근 나의 몸은 두 가지 상이한 경고를 동시에 보내왔다. 손목과 목에 찾아온 거대한 통증은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였기에, 각각 다른 병원을 찾아야만 했다. 먼저 정형외과를 방문했다. 차가운 엑스레이 검사대 위에서 몸을 맡겼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뼈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 진단. 의사는 단순한 염증이거나, 혹은 엑스레이로는 포착할 수 없는 근육 단위의 미세한 손상일 가능성을 조심스레 언급했다. 당장은 물리치료나 주사 요법으로 통증을 경감시킬 수 있다고 안내했고, 견딜 수 없는 고통에는 진통제나 신경안정제, 수면유도제까지 고려할 수 있다고 친절히 덧붙였다. 언젠가는 수술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는 그의 건조한 위로에, 나는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일상에서의 노력을 물었다. 그는 글을 쓰는 행위를 배제하더라도 손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니 보호대 착용을 권유했다. 내 통증 양상에 맞는 보호대를 별도로 구매하여 착용하자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또한 내게 주어진 운명의 한 조각이라 여기며 사랑해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비인후과는 아직 발걸음하지 못했다. 나의 천성적인 게으름과 유독 신체에만 관대한 낙천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목의 통증은 손목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급작스럽게 찾아온 이 고통은 무언가를 삼킬 때마다 목 전체를 날카롭게 긁어내리는 듯한 감각을 선사했다. 마치 잠을 깨우는 한 잔의 진한 커피와도 같았다. 카페인이 강하게 들어간,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그런 종류의 커피였다. 다만, 일반적인 커피 한 잔이 동료들과의 대화 꽃을 피우는 연결고리가 되어주기도 하는 반면, 이 통증은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 할 고립된 고통이었다. 통증은 내 목소리를 평소보다 더욱 낮게 잠겨 있는 상태로 유지시켰고, 이는 마치 신체가 '함구하라'는 반항이자 투쟁을 벌이는 듯했다. 가장 큰 문제는 예고 없이 터져 나오는 재채기였다. 이따금 모두를 놀라게 하는 산발적인 울음에는 한이 서려있지 않았지만, 유감스럽게도 피가 서려있었다. 모두를 위해 입을 가리고 재채기를 하는 배려는 이제 필수가 된 것이다.

BEHIND STORY

그 프로젝트는 단순한 글쓰기를 넘어선, 삶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도박과도 같았다. 몇 달간 밤낮없이 매달린 원고는 내 영혼의 조각들을 깎아내어 형상화한 결정체였다. 마감 기한은 목전이었고, 나는 잠과 식사를 최소한으로 줄여가며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춤추게 했다. 손목의 시큰거림은 미친 듯한 몰입 속에서 잠시 잊히는 작은 희생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이 정도의 고통은 창작의 열정을 증명하는 훈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목의 통증은 달랐다. 원고를 마무리하던 새벽, 마지막 문장을 쓰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는 순간, 마치 칼날이 목구멍을 훑고 지나가는 듯한 격렬한 고통이 찾아왔다. 며칠 밤낮을 웅크린 채 속삭이듯 이야기를 풀어내던 몸이, 이제는 소리를 내는 것조차 거부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정점은 피 묻은 재채기였다. 그것은 단순한 증상이 아니었다. 한계에 다다른 육체가 마지막 남은 힘으로 내지르는 비명, 더 이상 이대로는 버틸 수 없다는 절규였다. 이 글은 그 비명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나의 첫 번째 기록이자, 창작의 열정이 불러온 몸의 비극에 대한 고해성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