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

"그러나 정작 이러한 기술을 사용하는 우리 인간의 소통 방식은 역설적이게도 점점 더 평면적으로 변하고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3차원 세상을 인지하며 살아간다. 차원이란 대상을 구성하는 축의 수를 의미한다. 우리는 머릿속으로 4차원 공간을 직관적으로 그려낼 수는 없지만, 반대로 2차원이나 1차원 같은 더 낮은 차원은 쉽게 이해한다. 흥미롭게도 참 고차원적이다라는 표현은 때로는 깊이 있는 사고를 칭찬하는 말로, 때로는 종잡을 수 없는 충동성을 비판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이는 우리가 과학적, 수학적 지식 없이도 차원이라는 개념을 일상 대화 속에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인류는 과학과 수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공학을 통해 눈부신 문명을 일구었다. 인공지능, 자율주행, 정교한 알고리즘 등은 이공계 인재들의 역량으로 탄생한 고도화된 기술의 산물이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 속도는 가히 폭발적이며, 우리는 이들이 만들어낼 미래 문명이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입체적인 형태를 띨 것임을 예감한다. 특히,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면서, 이제 공학적 질문을 넘어선 철학적, 윤리적 사고가 필수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이는 분명 관련 분야 인재들의 깊이 있는 사유를 요구하는 새로운 차원의 과제이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기술을 사용하는 우리 인간의 소통 방식은 역설적이게도 점점 더 평면적으로 변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방대한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제공한다. 혹여 오류가 발생해도 곧바로 수정되어 올바른 정보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현대인이 정보를 탐색하는 행위가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찾아 나서는 데에 그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유발한다. 첫째는 자신이 원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태도이다. 수학 공식이나 외국어 단어의 뜻처럼 개념적인 정보는 필요한 부분을 정확히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역사나 정치와 같은 영역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분야의 정보는 단순히 원하는 것만을 보아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특정 사건이나 결정은 필연적으로 그 흐름과 앞뒤 맥락, 개인의 심리, 주변 환경 등 다양한 요소를 입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역사적, 정치적 사건을 단편적인 개념 정보처럼 다루는 경향이 있다. 물론 핵심 개념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나, 오직 그 개념만을 바탕으로 타인이나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대한민국 사회는 좌우 진영이 극단적으로 나뉘어 있어, 상호 토론이나 논쟁에서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하려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이는 하나의 사건이나 결정을 결코 입체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행위이며, 열린 태도가 결여된 채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을 근거로 진영 논리를 펼치는 것은 위험하다.
둘째는 탐색 방식 자체의 문제이다. 과거에는 길게 서술된 책이나 신문 같은 전문적인 글을 통해 정보를 탐색했고, 교차 검증 과정을 거쳐 옳고 그름을 스스로 분별하는 훈련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SNS라는 공간 속에서 알고리즘이라는 명목 하에 다분히 편향적인 정보들을 제공받는다. 각자 맞춤형 정보라는 미명 아래, 교차 검증은 물론 사건의 전체 흐름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영상, 몇 장의 사진과 몇 글자로 압축된 설명으로는 한 시대의 복잡한 맥락을 온전히 담아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러한 정보 소비 행태는 상대 진영과의 논리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상대방의 논리가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근거 자체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실행력과 진취적인 의미의 관철은 그저 하나의 완고한 아집으로 변질될 뿐이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3차원의 세상을 다시 한번 둘러보자. 도로는 곧고 완만하게 뻗어 있지만, 건물은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자동차는 도로 위를 달리지만, 비행기는 건물보다 훨씬 높은 상공을 가른다. 모든 것을 입체적으로 만들어낸 인간인 우리는 정작 소통에 있어서는 3차원보다 낮은 차원의 세상에 갇혀 있는 듯하다. 최소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3차원 세상의 복잡성만큼은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