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 소리, 삶의 마지막 온점

"죽음은 삶이라는 긴 문장을 마무리 짓는 숭고한 온점"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길가는 늘 어딘가 지쳐 보이고, 오가는 이들의 표정에는 고단함이 묻어난다. 높이 솟은 아파트 대신, 세월의 흔적이 짙은 낮은 빌라들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다. 흔히 말하는 '부'의 상징과는 거리가 먼 풍경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곳 사람들도 여느 도시의 사람들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분주히 움직인다. 삶은 어떤 환경에서든 계속된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매일 목격하는 셈이다.
이 동네의 풍경 중 유독 두드러지는 것은 노인들의 존재이다. 낮이나 밤이나, 골목길과 공원에는 백발의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거나 홀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만큼 자주 들려오는 것이 바로 응급차의 비명 같은 사이렌 소리다. 종종 자신이 얼마나 다급한지를 높은 음계로 알리는데, 그 태반은 삶의 마지막 순간과 맞닿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 소리가 불편했다. 통계적으로 몇 초마다 사람이 죽네 마네 하는 이야기가 마치 내 눈앞에서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삶의 유한함이 이토록 적나라하게 들려오는 것이 거북했다. 하지만 이 소리를 매일같이 듣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삶의 한 조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죽음이 있어야 한 사람의 인생이 온전히 끝난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었다.
삶이라는 긴 문장을 완성하고 난 뒤 찍는 마침표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하는 문장을 다 쓰고 난 후에 찍는 하나의 '온점'처럼, 죽음은 한 사람의 서사를 마무리 짓는 숭고한 신호가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은 결코 슬픔만의 상징이 아니라, 한 인생이 온전히 마무리되었음을 알리는 꽤나 근사한 역할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오늘도 세상의 모든 마침표가 평온하고 행복한 마무리였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해가 저무는 어느 초여름 저녁, 나는 낡은 동네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그날따라 유독 지쳐 보이는 한 노인이 구급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실려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단면에 불과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 깊숙이 박혔다. 평생을 살아오며 쌓아 올린 시간들이 그 짧은 순간에 압축되어 보이는 듯했다. 문득, 그 노인의 삶이 어떠했을지 상상해보았다. 수많은 희로애락이 점철된 긴 문장이 이제 막 마지막 단어를 쓰고 마침표를 찍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그 장면은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렸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창밖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다시금 구급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때서야 이 낡고 평범한 동네가 품고 있는 묵직한 삶의 진실을 글로 옮겨야겠다는 충동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