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과 근육, 한계에 맞서는 투쟁

"한계는 극복의 대상이며 성장의 발판이다"
우리는 흔히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과 사색을 즐기는 사람을 전혀 다른 존재로 인식한다. 겉모습만 보아도 확연히 구분될 것이라 지레짐작하기 마련이다. 탄탄한 근육질의 몸을 가진 이를 운동선수로, 상대적으로 왜소하고 고뇌에 찬 얼굴을 한 이를 철학자로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이러한 생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통념이자, 인류 역사에 깊이 뿌리내린 관념이다. 칸트, 스피노자, 파스칼, 데카르트 등 시대를 풍미하고 현재를 관통하며 미래의 사상을 선취한 수많은 철학자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자신의 사상만큼이나 특유의 외형으로도 유명했고, 후대 사람들은 그들의 내면 세계에 집중하여 그들을 묘사했다. 육체적 발전이나 외형적 표현보다는 내면의 깊이를 드러내기를 선호했던 그들의 모습을 제자들이 충실히 기록했고, 이는 정신과 사상에 초점을 맞춘 서술로 이어졌다. 그 결과, 우리는 이들의 이미지를 고정관념처럼 머릿속에 각인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굳어진 통념과 고질적인 편견이 하나의 기제로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은 우리가 잘못되었다거나 운동을 좋아하는 이들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위대한 사상가들의 정신과 운동선수들의 몸에 함께 깃든, 놀랍도록 강력한 공통점을 발견하고자 한다.
두 집단은 모두 자신의 한계와 늘 처절하게 부딪혔다. 그들은 싸우고 물고 뜯고 늘어지며 수시로 패배하고 때로는 자신을 맹렬히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그 과정에서 사유의 폭이 넓어지고, 근육이 더욱 견고하게 붙으며 한층 더 위대한 존재로 성장했다. 매일같이 엄격한 일정을 통제하며 끝없는 사유의 폭을 확장해나간 칸트, '에티카'라는 인류 지성의 거대한 축을 홀로 세워낸 스피노자, 갈대와 같은 인간으로부터 탄생한 무한한 우주를 증명하려 도전한 파스칼, '코기토'라는 명철한 정신을 세상의 출발점으로 삼은 데카르트까지. 그들이 이룩한 업적은 결코 우연의 산물도, 단순히 타고난 천재성의 발현도 아니었다. 그것은 한계에 맞서 싸우고, 좌절하며,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는 고통스러운 투쟁의 결과물이었다.
우리 또한 매 순간을 다투며 살아간다. 계획이 틀어지는 순간, 불안과 공포가 온몸을 휘감으며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드는 경험을 한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당대의 위대한 사상가들이 느꼈던 것과 다르지 않은 감정에 직면한다. 맞서 싸워야 한다. 그 불안과 공포에 물고 뜯고 늘어져야 한다. 때로는 패배하고 자신을 욕하더라도, 다시 싸울 채비를 하고 일어서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그들과 같은 상대를 이겨낸 뒤에야 비로소 우리만의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이다. 몸이든 정신이든, 한계는 극복의 대상이며 성장의 발판이다.
어느 깊은 밤, 나는 책상에 앉아 도저히 풀리지 않는 난해한 철학적 문제와 씨름하고 있었다. 수많은 자료를 뒤지고 밤을 새워가며 논리를 재구성했지만, 마치 거대한 벽에 부딪힌 듯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불안과 자괴감이 전신을 옥죄어왔다. 그때였다. 창밖으로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 나오는 건너편 헬스장에서, 한 남자가 땀으로 범벅된 채 역기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팔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듯 부들거렸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간신히 역기를 내려놓더니,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바벨을 잡았다. 실패와 시도, 고통과 인내의 반복. 그 묵묵한 투쟁의 순간이 나에게 강렬한 깨달음을 주었다.
내가 지금 종이 위에서 겪는 지적 고뇌와 그 남자가 쇠붙이 앞에서 겪는 육체적 고통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둘 다 자신의 한계와 싸우고, 패배를 경험하며,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있었다. 그 밤, 나는 펜을 들고 그 깨달음을 글로 옮겨 적기 시작했다. 육체와 정신의 경계를 넘어선, 인간 본연의 투쟁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