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상티망이 드리운 현대판 전체주의의 그림자

르상티망, 전체주의
"르상티망은 '너도 더 이상 누리지 마라'며 모두를 자신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파괴적인 하향 평등화의 심리다."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전례 없는 번영을 구가한 지 약 100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에는 미묘하면서도 심각한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고속도로 패스트트랙 규제론부터 VIP 우대 축소에 이르는 다양한 요구 속에서,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감정적 평등주의가 다시금 강력한 대세로 떠오르는 현상이다. 인류는 어째서 피로써 새겨진 역사적 교훈을 망각하고, 한때 실패로 귀결되었던 이념의 유령을 기어이 다시 불러내고 있는 것일까?

망각의 주기와 자본주의의 폭주

역사학의 '장기 파동설'이 시사하듯, 전쟁과 체제 실패의 참혹한 경험을 직접 겪었던 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 다음 세대는 현재의 풍요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과거의 경각심을 잊는다. 이러한 기억의 공백기에 자본주의 고도화가 낳은 극심한 양극화가 심화되면, 대중은 비로소 깊은 박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때 시장의 무분별한 폭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려는 칼 폴라니의 '사회의 자기보호' 본능이 발동하며, 평등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마치 용암처럼 분출하게 된다.

니체의 르상티망과 하향 평등화

이러한 대중의 요구를 지배하는 감정의 실체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통찰했던 '르상티망(Ressentiment)', 즉 원한과 질투의 복합적인 감정이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강자의 위치에 도달할 수 없는 약자는, 강자가 누리는 조건을 '악'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무능과 무력을 '선'으로 포장하는 가치의 전도 현상을 일으킨다. 이는 "나도 너처럼 누리겠다"는 상승 지향적 욕구가 아닌, "너도 더 이상 누리지 마라"며 모두를 자신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파괴적인 하향 평등화의 심리다. 과거 공산주의와 전체주의가 대중을 선동하고 체제를 전복할 때 가장 강력한 심리적 무기로 활용했던 것이 바로 이 르상티망이었다.

현대판 전체주의: 팬덤 정치와 알고리즘의 덫

과거의 전체주의가 광장에서 대중을 직접 선동하며 집단 광기를 유도했다면, 오늘날 한국 사회는 '팬덤 정치'와 'SNS 알고리즘'이라는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통해 이를 교묘하게 재현하고 있다. 현대 정치의 팬덤화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의의 장을 마비시키고, 사회를 '우리 편과 저편', '선과 악'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분열시킨다. 대중은 알고리즘이 정교하게 구축한 확증 편향의 거울 속에 갇혀, 상대 진영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는 비극을 반복한다. 이는 평등이라는 고귀한 명분 아래 개인의 자유와 법치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갉아먹는, 현대판 전체주의의 섬뜩한 징후가 아닐 수 없다.

시계추를 멈추기 위한 이성의 숙제

인류가 이토록 반복적으로 동일한 실수를 저지르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이 이성보다 감정에 훨씬 취약하며, 르상티망이라는 본능적인 감정이 시스템의 미세한 빈틈을 끊임없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고, 포퓰리즘이 정의로운 명분으로 둔갑하여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지금, 시계추가 파국적인 지점으로 치닫지 않도록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용기 있게 이성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가장 절박하고 시급한 숙제이다.

BEHIND STORY

몇 년 전, 유서 깊은 학술 토론회에서 목격한 한 장면은 필자의 오랜 믿음을 뿌리째 흔들었다. 그날의 주제는 복잡한 사회 경제적 불평등 해소 방안이었고, 참석자들은 각기 다른 시각과 심도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논의에 임했다. 그러나 토론이 절정에 달했을 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논의의 흐름이 완전히 뒤틀렸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미리 조직된 듯한 일부 참석자들이, 합리적인 대안 제시보다는 감정적인 비난과 인신공격으로 장을 혼탁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나도 가지겠다'는 건설적인 욕구 대신, '너도 더 이상 가져서는 안 된다'는 파괴적인 질투와 원한이 역력했다. 좌중을 압도하던 것은 이성적인 분석이 아닌, 집단적 분노와 특정 계층에 대한 맹목적인 적대감이었다. 유능한 좌장마저 통제력을 잃었고, 한때 진지하게 경청하던 청중은 침묵하거나, 혹은 그 감정적인 선동에 동조하며 함께 격앙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필자는 깨달았다. 니체의 르상티망, 칼 폴라니의 사회적 자기보호 본능, 그리고 현대판 전체주의의 징후들이 더 이상 책 속의 이론이나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들은 바로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이성적이어야 할 공간마저 잠식하며 활개 치고 있는 생생한 현실이었다. 그날의 충격적인 경험은 이 글을 쓰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시계추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 이성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절박한 의무감을 안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