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않는 것이 축복이다

데이비드 베네타, 반출생주의
"태어나지 않는 것이 고통 없는 삶을 위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삶은 고통의 연속인가, 아니면 축복인가? 우리는 흔히 삶의 아름다움과 희열을 노래하지만, 누군가는 인간의 존재 자체가 해악이라고 주장한다. 이 격렬하고도 냉철한 주장은 바로 '존재하는 것은 해악이다'라는 문장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베네타의 '반출생주의'에서 비롯된다. 그의 사상은 단순히 아이를 낳기 싫다는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 깊이 있는 철학적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인간의 출산을 반대한다. 궁극적으로는 인류의 자연스러운 소멸을 이상적인 목표로 삼는 급진적인 사상이다.

베네타는 왜 이토록 극단적인 주장을 펼쳤을까? 그의 주장의 기저에는 오직 인간만을 생각하는, 어쩌면 바보 같을 정도로 순수한 사랑이 깔려 있다. 그는 이 사랑을 수학적 공식처럼 명료하게 설명한다.

인간이 태어났을 때, 삶의 고통을 짊어지고(나쁜 일), 삶의 즐거움을 누린다(좋은 일). 반면 인간이 태어나지 않았을 때, 삶의 고통이 없고(좋은 일), 삶의 즐거움이 없다(나쁘지 않은 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고통은 있을 수 없으니 이는 좋은 일'이라는 점과, '즐거움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나쁘지 않은 일'이라는 비대칭성이다. 즉, '나쁨/좋음''좋음/나쁘지 않음'을 비교할 때,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고통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안전하고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태어날지 말지 선택해야 한다면, 태어나지 않는 쪽이 훨씬 유리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또한 베네타는 인간이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과거의 힘든 경험조차 '그때는 그랬지'라며 미화하는 경향을 '낙관주의 편향'으로 지적한다. 우리는 삶의 고통을 과소평가하고,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하려는 본능적인 편향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이 편향에서 벗어나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면, 인류는 결국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종족 번식은 흔히 본능이라고 하지만, 베네타는 이것이 사회 구조가 가르치고 주입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현대에 들어 여성 인권 향상과 교육 수준의 증가로 다양한 삶의 선택지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는 출산이라는 '본능'을 삶의 중심 가치로 가르치고 있다.

당신은 어떤가? 인간은 더 이상 고통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자연스럽게 소멸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 최고의 지성체로서 그 '본능'과 종족을 유지하고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

BEHIND STORY

그날 밤, 병원 복도를 걷던 내 발걸음은 유난히 무거웠다. 갓 태어난 조카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환희에 찬 가족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슬픔을 느꼈다. 작은 아기는 붉은 얼굴로 힘껏 울고 있었고, 그 울음은 마치 세상에 던져진 존재의 비명처럼 들렸다. 모두가 새 생명의 탄생을 축복했지만, 내 눈에는 그 여린 존재가 짊어질 고통의 무게가 먼저 보였다. 어쩌면 무지했기에 행복했던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듯했다. 그 밤 이후, 나는 삶과 죽음, 그리고 존재의 의미에 대해 밤낮없이 파고들었다.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사랑과 이별. 이 모든 것을 겪어야 하는 존재가 과연 축복받은 것인가? 이 질문은 내 안에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마침내 데이비드 베네타의 반출생주의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의 논리는 내가 막연하게 느끼던 불안과 의문에 명확한 언어를 부여해주었다. 그날의 울음소리가 내게 던진 질문은, 결국 이 글을 쓰게 된 깊은 이유가 되었다. 나는 그저 이 복잡한 질문을 당신과 함께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