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페인 중독자다, 그래서 지구를 구한다.

"방구석에 처박혀 글이나 쓰는 처지에서, 세계 평화에 기여한 듯한 짜릿한 만족감을 단돈 몇백 원에 사는 셈이다."
일상이 된 커피 한 잔은 카페에서나 집에서나 이제 은근한 협박으로 다가온다. 자차가 있는 친구들이 주유소 전광판의 휘발유값을 보며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며 괴성을 지를 때, 차도 없는 나는 조용히 내 손에 들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려다본다. 뜨겁게 날뛰는 물가 속에서, 내 피를 돌게 하는 이 녀석의 가격 역시 치솟고 있었다.
스스로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흔히 말하는 카페인 중독자다. 언제부터, 왜 시작되었는지는 알 길 없다. 그저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하루 최소 두 잔의 카페인을 몸 속에 찔러넣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온전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하는 병에 걸렸을 뿐이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노란색으로 칠해진 '착한 가격'의 커피 브랜드들을 전전해 보아도 하루에 나가는 돈은 4천 원을 훌쩍 넘어간다. 성공한 직장인들에게야 껌값일지 몰라도, 이제 막 글판에 이름을 내밀어 보려는 무명 글쟁이에게 이 지출은 끊어내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달콤한 해악이었다.
주변에서는 쉽게들 말했다. "야, 돈 아까우면 그냥 맹물 마셔."
그 무책임한 한마디에 던질 수 있는 반박이라곤 오직 하나뿐이었다. "물만 마시면…… 잠이 와. 원고지 위로 고꾸라진다고."
그래도 양심을 챙긴 때가 있었다. 주변의 잔소리를 듣는 시늉이라도 해보려 한동안 맹물만 마시며 버틴 적이 있었다. 물만 마시며 사흘을 몽롱하게 보내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내 방 책상 위에는 캡슐형 커피머신 한 대가 위풍당당하게 놓여 있었다. 누가? 도대체 왜? 구매했는지 알 수 없지 않았다. 내가 산 것이니까.
이 '충동구매'는 의외로 꽤 합리적인 소비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캡슐 하나에 천 원도 안 되는 돈으로 매일 아침 방구석 바리스타가 될 수 있었고, 기분에 따라 에스프레소니 룽고니 골라 마시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따로 있었다. 다 쓴 캡슐을 그냥 버리는 게 아니라, 전용 보관 백에 모아두면 브랜드에서 직접 수거해 재활용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지구온난화니 환경보호니 하는 거창한 담론에는 통 관심이 없었다. 겨울엔 추운 게 당연하고 여름엔 더운 게 섭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기후 변화는 현실적인 위협으로 목덜미를 잡아왔다. 살인적인 한여름의 폭염, 길을 잃은 듯 쏟아지는 기록적인 폭우, 그리고 사람을 집어삼킬 듯한 겨울의 폭설까지. 매년 뉴스를 장식하는 기상천외한 날씨들은 내가 살던 나라를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낯선 행성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40도가 넘는 유럽의 뉴스나 도시 기능이 마비된 미대륙의 한파 소식을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저려오던 참이었다.
그런데 바로 지금, 작은 방에서 조용히 커피를 내려 마신 뒤, 단 한 번의 '딸깍' 소리와 함께 이 거대한 지구를 구하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알루미늄 캡슐을 재활용 백에 툭 던져 넣는 그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이 묘하고도 거대한 '도덕적 우월감'이란! 방구석에 처박혀 글이나 쓰는 처지에서, 세계 평화에 기여한 듯한 짜릿한 만족감을 단돈 몇백 원에 사는 셈이다.
결국 이 기나긴 고백의 요지는 심플하다. 나는 앞으로도 이 지독한 커피 중독을 끊을 생각이 전혀 없으며, 그러니 지구를 위해 재활용이라도 필사적으로 잘하겠다는 것. 그래야 이 아름다운 지구에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그리고 "저렴하게" 마실 수 있으니까!
그날도 여느 때처럼, 막 잠에서 깨어난 뇌를 억지로 깨우기 위해 캡슐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익숙하게 흘러내리는 검은 물줄기를 보며, 문득 며칠 전 친구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내가 다 쓴 캡슐을 전용 백에 모으는 모습을 보더니, 피식 웃으며 이런 말을 던졌다. "야, 솔직히 너처럼 하루 종일 방구석에 앉아서 글이나 쓰는 애가 뭘 그렇게 환경을 생각한다고. 그거 하나 버린다고 지구가 안 망하겠냐?"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묘하게 비수가 되어 박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캡슐 하나를 재활용 백에 넣는 일뿐인데, 그마저도 비웃음거리가 될 수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손에 들린 캡슐은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 같은 무명 글쟁이가 거대한 세상의 파도 앞에서 무력함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던지는 아주 작은 저항의 몸짓이었다. 이 지독한 카페인 중독이, 어쩌면 나에게는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이자, 내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기묘한 순례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글은 그날의 씁쓸한 비웃음에 대한 답가이자, 아무것도 아닌 내가, 그래도 뭔가 되고 싶어 하는 처절한 발버둥의 기록이다. 이 작은 캡슐 하나가, 나의 불안한 삶을 지탱하는 동시에, 내가 이 지구에 기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증거가 되어주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