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과 정에 무뎌진 나: 뭉툭한 덩어리가 아닌, 당신만의 조각상이 되는 길

조각상을 고민하는 조각가
"당신은 뭉툭한 덩어리가 아닌, 스스로 빛나는 조각상입니다."

삶은 때로 거친 끌과 날카로운 정으로 우리를 두드리는 과정과 같습니다. 수많은 시련과 고통, 외부의 비판과 압박 속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무던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처음에는 아픔에 비명을 지르던 영혼도 시간이 흐르면 그 통증에 익숙해지고, 더 이상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게 됩니다. 마치 거친 바람에 깎이고 파도에 씻겨나가며 둥글어지는 돌멩이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뒤돌아봤을 때, 우리는 깨닫습니다. 그 오랜 시간의 인내가 우리를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빚어낸 것이 아니라, 그저 아무런 특징 없는 뭉툭한 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날 선 고통 속에서 견디고 또 견디며,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을 꿈꾸었을까요? 빛나는 조각상처럼 고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싶었을까요, 아니면 그저 모든 모난 부분을 깎아내고 평범함 속에 숨고 싶었던 것일까요?

이렇게 변해버린 모습 앞에서 우리는 깊은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잃어버린 본래의 형상을 되찾기 위해 다시 한번 누군가의 날카로운 손길이 필요한 것일까요? 아니면 이대로 뭉툭해진 채로 남은 여생을 살아가야 하는 운명일까요?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놓쳤던 순간들을 후회하며,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옵니다. 아픔에 무던해지는 대신, 솔직하게 비명을 지르고 저항했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진정한 변화는 외부의 끌과 정을 견디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스스로를 깎아내려는 용기에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무뎌진 감각을 일깨우고, 뭉툭해진 자아를 다시 예리하게 다듬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라는 이름의 걸작을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잃어버린 당신의 날 선 아름다움을 다시 찾아내십시오. 당신은 뭉툭한 덩어리가 아닌, 스스로 빛나는 조각상입니다.

BEHIND STORY

이 글의 시작은 어느 겨울날, 낡은 공방 한구석에 놓인 뭉툭한 대리석 덩어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거대한 돌덩이는 무심하게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옆에는 날카로운 끌과 여러 크기의 정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문득 저 돌덩이가 바로 우리네 삶의 한 단면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많은 외부의 힘과 압력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깎여나가고 다듬어지는 우리들의 모습 말입니다.

그날 공방을 나와 한참을 걷는 동안, 제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질문만이 맴돌았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 끌과 정에 의해 진정으로 '빚어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마모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예술가의 손길 아래 놓인 돌은 분명 의도된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갑니다. 하지만 우리 삶의 '끌과 정'은 때로 무자비하고 무목적하게 우리를 깎아내려 우리를 뭉툭한 덩어리로 만들 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사색은 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나 또한 세상의 기준과 타인의 시선이라는 날카로운 도구들 앞에서 나만의 고유한 모서리를 잃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타인의 기대에 맞추려 애쓰고, 갈등을 피하려 스스로를 둥글게 만들며, 내면의 진짜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은 뼈아팠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외부의 힘에 의해 수동적으로 깎여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지향점을 찾아 스스로를 섬세하게 조각해 나가야 한다는 다짐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글은 그 다짐의 기록이자,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많은 분들에게 뭉툭한 덩어리가 아닌 당신만의 빛나는 조각상이 될 용기를 전하고자 하는 작은 바람에서 탄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