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소녀, 그녀가 본 세상은 빛이 아닌 '빚'이었다

눈 뜬 그녀에게 보인 것은 오직 빚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두 눈이 먼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세상은 끝없는 어둠이었고, 그녀의 유일한 할 일은 그저 숨 쉬며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날이 갈수록 말조차 하지 않는 소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 세상의 아름다운 색채와 풍경을 딸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매일 밥처럼 목구멍을 넘어갔다. 그들의 집은 깊은 침묵 속에 잠겨 있었고, 소녀의 존재는 그들에게 기쁨이자 동시에 깊은 슬픔의 근원이었다.

부모는 매일 정성껏 음식을 마련하여 소녀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것은 딸을 향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었지만, 어쩌면 딸이 죽지 않고 곁에 머물기를 바라는 얄팍한 이기심이기도 했다. 사랑과 의무, 그리고 알 수 없는 욕망이 뒤섞인 그 음식은 소녀의 생명을 붙잡아 두는 유일한 끈이었다. 그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은 마을 사람들에게도 알려져 있었다. 모든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측은히 여겨 크고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그들의 마음에 또 다른 무언가를 쌓아 올렸다.

시간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강물처럼 흘러갔다. 소녀가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도 세상은 쉼 없이 변화하고 발전했다. 과학기술은 눈부신 속도로 빠르게 발전했고, 마침내 눈먼 자들에게 빛을 선물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 발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소식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소녀의 부모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그 소식을 듣자마자 그동안 먹던 안타까움을 기쁨으로 토해내듯 내려놓았다. 그리고 매일 소녀에게 먹이던 음식, 어쩌면 그 깊은 이기심의 잔여물까지도 홀가분하게 내려놓았다.

부모는 이제 소녀가 두 눈으로 자연의 경이로운 아름다움, 자신들의 사랑 가득한 얼굴, 그리고 거울에 비친 소녀 자신을 보며 감탄할 순간을 꿈꿨다. 그들은 딸의 눈빛 속에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가장 뛰어난 의료진과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병원에서 소녀의 수술은 완벽하게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아직 눈을 뜰 수는 없었지만, 퇴원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에 부모는 감격하며 소녀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와 소녀가 스스로 눈을 뜰 때를 기다리며 숨죽인 시간을 보냈다.

오랜 침묵 끝에 소녀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이제 눈을 뜰 수 있을 것 같아요."

부모는 그 한마디에 억누를 수 없는 감격에 휩싸였다. 소녀의 두 눈에 자신들의 모습이 온전히 담기는 것, 그리고 그 감격이 고스란히 소녀의 표정에 피어나는 모습을 상상하며 가슴 벅찬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나의 딸! 세상이 보이니? 우리의 얼굴은? 또 이 거울 속에 담긴 네 자신의 얼굴은? 모든 것이 너무 낯설지는 않지? 이런 날이 오다니 거짓말 같구나!"

소녀의 아버지는 감격에 겨워 끊임없이 말을 이어갔고, 어머니는 옆에서 소리 없는 눈물로 그 감격을 훔치고 있었다.

하지만 소녀의 대답은 그들의 기대와는 너무나 달랐다.

"네, 보여요. 하지만, 제가 상상하던 모습과 다르지 않네요. 세상도, 자연도, 사람들의 얼굴도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는 말을 멈췄고, 어머니는 흐르던 눈물을 거두었다. 소녀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제 눈에는 오직 세상에 갚아나가야 할 빚이 보여요. 오랜 시간동안 먹어온 그 음식들, 당신들과 마을 사람들의 수고, 그리고 저를 품어준 자연의 힘, 이 모든 것이 제겐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한 빚으로만 느껴져요."

아주 늦은 밤, 소녀의 옛 눈과 같은 깊은 어둠이 세상을 뒤덮었을 때, 아무도 보지 않는 고독한 어둠 속에서 소녀는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기를 택했다. 그녀의 마지막 선택은 그렇게 조용하고 쓸쓸하게 이루어졌다.

다음 날 아침, 해는 어김없이 밝았다. 부모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금 깊은 안타까움을 먹고, 텅 빈 마음으로 출근길을 서둘렀다. 그들의 삶은 다시금 끝나지 않는 슬픔의 굴레 속으로 돌아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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